먼저 죄송하다고 말씀드립니다. 저는 본관이 탐진이며 해주가 아닙니다. 너무나 잘 꾸며 놓은 해주최 문중의 홈페이지를 보다가 수정되어야 할 부분을 발견하고 글을 올립니다. 최지식사전-본관연혁-탐진최씨시조 사전에서 ""사전은 해주최씨 시조 온의 증손이며 문헌공 충의 손자이다""라고 되어 있읍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읍니다. 1921년 일제 강점기에 개성에서 최사전의 묘소가 도굴되고 묘지명이 출현하면서 기존의 해주최씨 분파설이 허위임이 밝혀 진 것입니다. 그전에는 최온- 최충- 최유길- 최사전 로 계보를 잇고 최사추공의 아우라고 했읍니다. 그러나 崔思全공의 묘지명에는 사전의 조부는 상약국직장 최철, 부친은 장작감 최정이며 그 선조는 탐진현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읍니다. 최사전공의 묘지명은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 보관 전시 중입니다. 최사전공의 자는 휼세이며 사전이란 이름은 선종임금이 내려주신 것입니다. 최사전공의 생각´思´자는 돌림자가 아닙니다. 崔思諏공은 1034년생이며 최사전공은 1067년생으로서 33년이란 차이는 친형제가 되기 어렵습니다. 崔惟吉공이나 崔惟善공에게도 최사전이란 아드님은 계보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덧 붙여 말씀드리자면 나주최씨에 대해서도 표해록을 지은 최부는 본관이 나주가 아니고 탐진입니다. 1454년생인 최부는 조선조 과거합격자 명단인 <傍目>에 본관은 탐진이며 나주에 산다(本耽津 居羅州)고 했읍니다. 탐진최씨 나주 성지공파에서 최부공의 교지를 보관하다가 역시 국립광주박물관에 기증하여 보관 중입니다. 최부공은 후사가 없고 따님만 3분을 두었으므로 나주최씨가 그분의 직계후손이 될 수 없는 것이 진실입니다.
여러 전란으로 각 씨족의 계보가 유실되고 뿌리를 찾아 애쓰던 탐진최씨 문중에서 해주최씨 문중에 계보를 잇다가 저지를 과오를 부끄럽게 생각하며 그냥두고 지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래에 들어 탐진최씨 족보는 모른 것은 그대로 두고 허위는 제거하자고 하여 잘못된 기록을 없앴읍니다. 해주최씨 문중에서도 해주최씨와 무관한 것으로 밝혀진 사실들을 그냥 남겨두시지 말기를 부탁드려 봅니다. 해주최 문중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기 위해서 회원 가입을 하였던 점도 고개를 숙여 양해를 부탁드립니다.